어느 날 서점에 들렀다가 스치듯 발견한 책. 제목을 보자마자 집어들 수밖에 없는 끌림이 있었다.
도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썼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가 쓴 책으로 반복되는 허무한 인생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인생의 허무를 직면하라
단테는 그 유명한 '신곡'의 첫 부분을 이렇게 시작한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 거칠고, 가혹하고,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도 그보다는 덜 쓸 것이다."
나 역시 길을 잃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허무와 불안 속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 느낌이라 도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고 싶었다. 책의 저자는 인생의 허무를 직면하라고 조언한다.
인생은 허무하다.
부와 명예를 쌓아도, 유희와 쾌락으로 채워도, 행복과 만족을 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은 흐르고 거품은 잦아들고 공허함이 찾아온다.
우리의 생은 대체로 대단히 특별할 것도 없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은 허무하고, 그 허무를 직면해야 한다.
도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그 허무를 이야기 한다.
우리는 이룬 것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하루, 그 생의 흐름에 두려움을 느낀다. 생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생이 이토록 빨리 지나가다니. 이럴 때 두려운 것은, 화산의 폭발이나 혜성의 충돌이나 뇌우의 기습이나 돌연한 정전이 아니다. 실로 두려운 것은, 그냥 하루가 가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시간이 흐르고, 서슴없이 날이 밝고, 그냥 바람이 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봄이 가는 것이 아쉬운가. 세월이 가는 것이 그리 아쉬운가. 아쉬운 것은, 저 아름다운 것이 지나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내되 못 든 것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규정한 시간에 종속되며,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필멸의 존재이다.
많은 이들이 쫓는 부, 미모, 명예 등은 언젠가는 터져 사라지게 되는 거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재 없이 거래할 수 있게 해주는 신용이라는 개념은 허구에 불과하며, 큐피드가 상징하는 성애도 감정의 고조상태가 지속될 수 없기에 열정적인 성애도 시간이 흐르면 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인간이 쫓는 것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며, 그 끝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에는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며 죽음의 춤은 어린아이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온다.
노년의 시간은 크게 자란 성긴 나무와 같다.
맛있는 과실이 달리는 나무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가지를 꺾고 괴롭히니, 제 명대로 죽지 못한다. 쓸모없음이야 말로 큰 쓸모라고, 자잘하게 유용한 나무는 크게 자랄 수 없다.
인생은 허무하다. 그 허무를 받아들이고 직면해야 한다.
허무한 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구성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시간은 흘러 봄은 지나가고 영광의 거품은 꺼지고 늙으며 쓸모를 잃게 될 것이다. 그 생을 긍정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은 허무하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듯이, 인간은 인생의 허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 없이도, 희망 없이도, 의미 없이도,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허무한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어차피 허무하고 덧없는 인생이니 의미 없이 흘려보내면 되는 것일까?
허무를 직면하는 것과 허무하게 사는 것은 다를 것이다. 허무를 직면하면 그 허무와 더불어 사는 생을 도모해 볼 수 있다.
허무한 인생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인간이 간직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선한 마음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어떻게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허무한 생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덧없는 삶을 견디기 위해 영원을 희구하는 글쓰기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은 어떨지 이야기한다.
허무를 직면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창조적인 활동으로 생을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하루를 살아가는 관점을 갖는다는 것
그리스 신화에는 죽음의 신을 능멸한 죄로 가혹한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지하 세계에서 하염없이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는데, 이는 반복되는 노역에 고통받는 인간의 삶으로 묘사되어 회자된다.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에서 시시포스의 형벌과 같은 삶에서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으로 자살을 꼽는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하지만 카뮈는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그 끝나지 않는 고통을 향해서 다시 걸어 내려올 수 있으며, 거기에 인간 실존의 위대함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시시포스의 형벌과 같은 반복되는 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일이 없어진 인간에게는 권태가 엄습해 올 것이다. 이제 시시포스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알아서 바위를 산 아래로 굴리기 시작한다. 권태를 견디기 위해 다시 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저자는 노동을 없애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노동의 질을 바꾸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 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젊었을 때 적성이나 재미를 떠나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에 몰두하여, 여생을 여가를 즐기며 느긋하게 살겠다는 계획은 문제가 있다. 그저 돈 때문에 해야 하는 노동의 불행과 권태 속에서 살아가야 할 남은 여생의 불행이 남아있는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이전에 썼던 '전시 조종사'에서 완공된 성당의 관리자나 성당 의자나 운반하는 사람으로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패배자이며, '지어 나갈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이'가 승리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일상과 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 자신의 노동을 어떻게 쌓아갈 것인가? 가 중요한 것이다.
단지 팔기 위해 허겁지겁하는 노동이 아니라 실생활에 필요한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공들인 노력, 일상의 디테일이 깃든 작은 예술이 우리의 노동을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들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어떤 관점으로 생을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그곳이 지옥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짐 자머시의 영화 '패터슨'에서는 주인공 패터슨이 뉴저지의 소도시 '패터슨'에서 매일같이 버스 운전이라는 똑같은 노동을 반복하는 일상을 비춰준다.
그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출근하여 버스 운전을 하다가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고, 퇴근길에 쓰러질 것 같은 우편함을 다시 세우고, 저녁을 먹고 반려견과 산책을 나서 단골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루틴 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비밀스럽게 자신만의 노트에 시를 쓴다는 사실이다. 매일의 일상을 반복적인 흐름 속에서 살아가면서 시를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에게 일상이란 그저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살아내며 창조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일상도 그러했으면 한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도서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허무한 인생을 직면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리듬을 갖고 살아가라고 제안한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시를 쓰는 패터슨처럼, 주체적으로 돌을 굴려내리는 시시포스처럼,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노동자처럼, 산책하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라고 제안한다.
내가 산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책에 목적이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오랫동안 목적 없는 삶을 원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목적보다는 삶을 원하므로. 목적을 위해 삶을 희생하기 싫으므로. 목적은 결국 삶을 배신하기 마련이므로. 꼭 목적이 없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나는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삶을 살고 싶지, 삶이란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 않으므로.
허무하고 반복적인 우리의 일상을 그래도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는 관점과 힘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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