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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소설집 리뷰

by 일상학습자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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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창비)은 최근 서점이나 도서관에 방문했을 때 계속 눈에 띄었던 책이었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니, 일상의 일 경험으로 하루하루를 기쁨과 슬픔으로 채우고 있는 평범한 노동자가 이 책을 지나칠 수 있을 리 없었습니다. 도심을 배경으로 한 핑크빛 표지의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그 리뷰를 정리해 봅니다.

 

일상의 기쁨과 슬픔

도서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직장생활이나 일 경험에 관한 에세이가 아닐까 싶었으나 그보다는 우리의 일상과 삶에서 겪는 기쁨과 슬픔을 담은 단편 소설집이었다. 

 

작가 장류진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판교의 IT회사에서 10년간 일을 했던 경력이 있다. 회사에 들어간 1년차에 소설 쓰기 강좌를 통해 처음 소설을 쓰게 되었고, 등단을 하고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면서 최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작가라는 직업으로 전직했다고 한다.

창비 홈페이지에 작품이 공개된 직후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4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의 직장경험이 담긴 디테일한 글에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한 덕분이었다.

 

확실히 그의 소설은 직장인 우리들의 삶을 담고 있다. 

 

'잘 살겠습니다'에서 눈치없이 식사를 얻어먹으며 청첩장을 받아간 빛나 언니는 정작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고 축의금도 보내지 않는다. 얼마뒤 결혼을 한다는 그에게 축의금을 얼마나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뇌가 시작된다. 

 

'일의 기쁨과 슬픔'의 주인공 안나는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고 스크럼을 하는 수평적이고 에자일 한 조직문화의 겉모습에 취한 꼰대 같은 대표가 있는 IT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만난 유저 '거북이알'님은 제멋대로인 회장님의 눈 밖에 난 덕에 일년치의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아 중고거래로 현금화를 하고 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충분히 일어나는 곳이 회사라는 곳이고, 주인공 안나는 자신의 덕질을 위한 월급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에서는 썸을 타며 애정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직장동료와 오랜만에 후쿠오카에서 다시 만나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고,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의 주인공은 인턴과 계약직을 거쳐 드디어 정규직으로 합격한 회사의 첫 출근날 2,000원짜리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4,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이를 고민한다.

 

우리의 출근길과 회사 생활을 함께 하기라도 한 작가의 시선과 디테일한 묘사, 거기에 더해진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덕분에 단편들을 아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기에 최적의 소설이 아닌가 싶다.

 

도서 '일의 기쁨과 슬픔'

다소 느리고, 더디며, 낮은 우리를 위한 우화 

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의 네 번째에 담긴 단편 '다소 낮음'에는 효율이 다소 낮은 냉장고를 끼고 사는 싱어송라이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니, 그가 아니라 다소 느리고, 더디며, 낮은 우리가 그 주인공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가 장난처럼 만든 '냉장고송'을 연인 유미가 유튜브에 올렸는데 이게 대박이 난다. 조회수가 40만, 50만, 100만까지 치솟는 동안 다수의 기획사들에게 제안이 들어오고 일부에서는 상업성을 고려해 빠르게 음원을 출시하자는 적극적인 제안을 받는다.

인생은 타이밍이며 효율적인 선택을 해야한다는 그들의 제안을 뿌리친 주인공은 장난처럼 만든 음원이 아닌 시간과 공을 들여 전체의 맥락을 가진 정규 앨범을 출시하고 싶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고 지키는 음악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현실과 효율을 선택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고민하는 동안 영상의 화제성은 끝이 났고, 곁에 있던 연인 유미가 떠난다.

주인공은 집에 오는 길에 자신과 교감하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덥석 입양하고, 강아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예전에 자신이 거절했던 음반 기획사를 찾아가 다시 계약을 해보려고 시도한다. 

 

현실감각이 없어 주변의 걱정을 사는 주인공의 일상은 기대만큼 잘 풀리지 않는다. 그가 달리는 속도는 세상의 그것에 비해 너무 느리고 그의 판단과 행동은 대중의 기대보다 너무 더디며, 그의 셈과 효율성은 다소 낮다.

그럼에도 그의 일상은 계속된다. 그가 살고 있는 집에 비해 비현실적 큰 냉장고가 그래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윙윙거리고 있는 것처럼 그의 삶에 대한 믿음은 계속된다.

SNS에 등장하지 못하는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은 그럼에도 계속되고 우리들의 취향과 선호, 기대와 애정이 담긴 그 무엇이 그럼에도 의미가 있는 것처럼, 그의 삶과 그의 냉장고도 계속되어야 한다. 

 

취준생에서 직장인으로의 성장기 

장류진의 소설에는 취준생에서 직장인으로 성장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담겨있다. 

 

'탐페레 공항'의 휴학생은 명색이 다큐멘터리 피디 지망생인데 외국 한번 나가본 적 없다는 사실과 평범한 자신의 스펙에 한 줄을 더하기 위해 3개월의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지만, 경쟁이 치열한 피디 채용에 합격하지 못하고 부전공을 살려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된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의 생애 첫 정규직이 된 주인공은 연봉 2,663만 원, 세후 월 201만 원을 월세 50, 관리비 7, 공과금 10, 인터넷 1, 핸드폰 요금과 할부금 7, 결혼자금용 적금 55, 보험 12, 새 블라우스와 구두 등 17, 식재료와 생활용품 7, 남은 35를 쪼개서 교통비와 용돈으로 하루 만천 원씩 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새벽의 방문자들'에서 주인공이 집주인이 올려달라고 한 보증금이 부담스러워 급하게 이사온 곳은 지은 지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오피스텔이었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해서 불을 켜면 수많은 바퀴벌레들이 어둠 속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있다가 황급히 사라지는 게 느껴지는 그런 집이었다.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희망했던 직무에 배치되지 못하고 백오피스에서 몇년을 보내며 가까스로 전략기획팀으로 트랜스퍼에 성공한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며 입사동기인 남편과 자신 사이에 예상보다 큰 연봉차이가 존재함을 알게 된다.

'일의 기쁨과 슬픔'의 주인공은 꼰대같은 직장상사와 예민한 개발자 동료사이에서 지혜롭게 대처하며 공연 예매를 위해 늦은 밤까지 사무실에 남아 채팅방에서 자신의 덕질을 즐기고 있다.

'도움의 손길'의 주인공은 몇 년간 맞벌이로 모은 돈으로 20평대 아파트를 매입하여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리모델링한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꼼꼼한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집안일을 맡긴다. 그는 좁은 공간에 억지로 구겨 넣어야 하는 그랜드 피아노와 같이 느껴지는 아이는 낳지 않기로 결심하고 지금의 자신의 삶을 보다 즐기는 삶을 선택한다.

 

그들은 우리처럼 어렵게 취업에 성공하여 직장인이 되었지만 스스로 기대하던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일상을 버텨나가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또 무언가를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잘 살겠다는 다짐과 일의 기쁨과 슬픔 속에서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네 그것과 닮아 있기에 희망을 느끼게 된다.

 

직장인의 글

책 '일의 기쁨과 슬픔'의 장류진 작가가 십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병행한 글쓰기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화자인 안나가 회사생활을 버텨내는 덕질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등단 후에 밀려오는 집필의뢰를 놓칠까 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십 년의 직장생활 덕에 그에게 쓸거리들은 많이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글쓰기는 직장인의 N잡에서 하나의 업으로 바뀌게 되고 그는 이직을 하듯 직장인에서 전업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에는 직장인과 여성으로서의 자화상이 담겨있다. 소설의 곳곳에 등장하는 젠더 이슈는 자본주의의 숫자로 표현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들과 함께 그의 글을 보다 입체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는 듯하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들은 큰 고민 없이 쉽게 읽힌다. 하지만 그 글이 담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며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네 직장인들의 삶이 그렇듯, 내일을 기대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희망을 담고 있어 고마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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